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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

완다와 거상(리메이크)

 

메타크리틱 스코어 91점에 역대 최고의 리메이크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 완다와 거상.

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아무리 후하게 줘도 도저히 90점 이상을 줄 수가 없는 게임이었다.

아마도 후한 점수를 준 리뷰어들은 PS2판 완다와 거상(2005)을 인상 깊게 했던 원작의 팬으로 리메이크작에 각별한 감정을 느낀 경우가 많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쉽게 말해서 '추억보정'이 있었을 거란 얘기.

난 완다와 거상을 이름만 들어봤을 뿐 원작은 해보지 않은 입장이기 때문에 이런 추억보정 없이 현재 플레이 한 기준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일단 게임의 첫인상은 살짝 몽환적이면서도 쓸쓸한 분위기가 잔잔한 음악과 어우러져 꽤 좋은 편이다.

그래픽도 드넓은 초원과 시냇물이 흐르는 숲 속, 깎아지른 절벽과 계곡, 모래 바람이 부는 사막까지 맵 디자인 퀄리티가 상당해서 눈이 즐겁다.

하지만 첫 번째 거상을 잡기 위해 이동하기 시작하면 곧바로 단점이 드러난다.

가장 열 받는 건 카메라 시점인데 내가 원하는 뷰로 아무리 맞춰놓아도 다시 카메라가 멋대로 돌아가 버린다.

보통은 이럴 경우 카메라 시점을 고정시키는 옵션을 제공하는 편인데 완다와 거상엔 그런 거 없다.

그러면 자동카메라 시점이 좀 보기 편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불편한 시점을 강제하는 셈.

그리고 '아그로'라는 이름의 말이 이동 수단이자 게임 내 유일한 동반자로 등장하는데 이 녀석이 또 말썽이다.

조작감이 정상이 아니라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가 쉽지 않은데 특히 방향 전환은 심각한 수준이다.

마음 같아서는 말 안 타고 그냥 뛰어가고 싶지만 맵은 넓고 갈길은 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자동 달리기 같은 건 당연히 없음)

위에서 맵 디자인이 좋다고 했는데 자연경관의 웅장하고 광활한 묘사는 뛰어나지만 월드 내에 거상을 찾아가기 위해 기어오르는 것 말고는 아무런 상호작용도 없기 때문에 좀 돌아다니다 보면 굉장히 공허하고 텅 빈 느낌이다.(실제로 거상밖에 없으니 텅 빈 게 맞긴 함)

그리고 거상 공략을 위한 게임의 특징으로 나중엔 이해가 되지만 점프 버튼과 매달리기 버튼이 따로 존재하는 것도 처음엔 영 불편하고 적응하기 힘들다.

특히 바로 직전에 언차티드를 했던 터라 이런 불편한 기어오르기, 벽 타기 방식이 더 답답했던 측면이 있었다.

게임의 스토리는 죽은 여자 친구 살리기 위해 거상 16마리를 잡는 것과 엔딩에서의 약간의 반전 요소가 전부로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고, 게임 플레이는 신전에서 출발-> 거상 위치 찾기-> 거상 약점 파악해서 잡기-> 다시 신전으로 돌아옴의 구조인데 이걸 처음부터 끝까지 16번을 반복해야 한다.

문제는 거상의 공략보다 거상이 있는 곳까지 찾아 가는 게 더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건데 거상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주지도 않을뿐더러(방향만 알려준다) 몇몇 거상은 정말 찾기 힘들게 배치해놔서 짜증을 유발한다.

거상의 공략법은 다소 어이없는 것도 있지만 대체로 그럴듯하게 설계되어서 약점을 찾아내는 재미와 성취감이 있지만, 거상 위치 찾기는 정말 플레이타임 늘리기외에는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거상 위치는 공략을 보는 게 정신 건강과 시간 절약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거상의 주변 환경이나 거상 자체의 형태를 이용해 약점을 찾아내는 과정은 재밌지만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점프를 해야 하는 툼레이더식 점프 액션 요소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싫어하는 거라 인내심이 필요했다.

특히 16번째 마지막 거상에서 이런 점프 액션이 많이 필요한데 노말 난이도로 총 9시간의 플레이타임 중 2시간 가까이를 마지막 거상에 쓴 것 같다.

한번 점프 실수해서 떨어지게 되면 다시 바닥부터 기어 올라가야 하는데 플스 사고 처음으로 패드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나마 낙사하는 경우가 드물고 설령 죽더라도 바로 앞에서 다시 시작하니까 끝까지 했지, 쉽게 죽거나 중간 체크포인트부터 다시 찾아가야 했다면 아마 때려치웠을 거다.(다크소울과 블러드본을 빠르게 접은 이유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딱 중도포기 하기 직전의 지루함과 재미의 경계선에서 살짝 재미가 우세해 겨우 엔딩까지 갈 수 있었던 게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