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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라이트, 스포어로 피터몰리뉴의 뒤를 따르는가



흔히 세계 3대 게임 개발자(정확히는 미국의 PC게임 개발자)라 함은,
울티마의 리차드게리엇
문명의 시드마이어
그리고 파퓰러스의 피터몰리뉴를 말한다.
하지만 이들 셋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인물이 또하나 있으니 그가 바로 심 시리즈의 아버지 윌라이트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이들의 명성도 예전같지 않다.
리차드게리엇은 울티마온라인까진 최고의 명성을 누렸으나 EA로 오리진이 인수되며 맛이가기 시작한뒤 돌연 NC소프트로 스카웃.. 이후 수백억원의 개발비를 까먹으며 숱한 발매연기 끝에 내놓은 타뷸라라사마저 말아먹으며 최악의 먹튀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시드마이어는 해적이나 알파센타우리등도 있긴하지만 사실상 문명시리즈로 15년 넘도록 버티고 있는거나 다름없고, 그에게 더이상 새롭고 참신한 게임을 기대하긴 힘들어 보인다.
피터몰리뉴는 어떠한가.
파퓰러스와 던전키퍼, 블랙&화이트와 더뮤비등으로 꾸준히 활동을 해왔지만 몇년전 발매한 페이블이 그의 설레발에비해 실체는 그에 한참 못미치자 희대의 낚시꾼이란 비난까지 받게 되었다.(물론 게임자체로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희망은 윌라이트뿐이다.
심시티를 제외한 수많은 심시리즈들이 대부분 성공하지 못하며 약발이 다해갈즈음 그는 심즈로 시원하게 대박을 터뜨리며 재기했다.
물론 지나친 확장팩 러쉬로 인해 맥시스는 최고의 울궈먹기 회사라는 낙인을 코에이로부터 빼앗아왔지만, 어쨌건 그 인기는 심즈2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의 차기작인 '스포어'에 관심과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일단 스포어의 설레발은 개발기간부터 시작됐다.
스포어의 발매일이 가시권에 들어오자 수많은 언론들이 '7년간 개발한 윌라이트의 역작'등 찬양일색의 기사를 써내기 시작했다.
'미생물 세포단계부터 시작해서 진화를통해 우주를 아우르는 엄청난 스케일' 이것이 스포어의 타이틀이었다.
E3등에 출품할때마다 상도 많이 타먹었다.
나 또한 이런 스포어에 대한 소식을 접할때마다 PC패키지 게임시장의 마지막 자존심을 윌라이트가 지켜줄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를 가졌다.

시간은 흐르고 스포어의 발매일이 9월로 확정되며 기대치가 최고조에 달하던 올해 6월, EA에서는 스포어의 크리쳐 창조툴을 만원을 받고 팔아먹기 시작했다.
게임내에 기본으로 포함되어있는 크리쳐툴을 게임본체 발매전에 따로 돈을 받고 팔아먹겠다는 발상에 난 할말을 잃어버렸다.
물론 스포어에서 크리쳐툴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고 툴 자체도 정말 훌륭하다.
하지만 그 툴로는 크리쳐를 만들 수 있을뿐 정작 게임은 즐길 수 가 없는것인데 그걸 팔아먹겠다니.. 돈에 환장하지 않고서는 할 수 가 없는 짓이다.
어차피 툴로 게임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본체발매전 크리쳐툴을 무료로 배포했더라면.. 그랬다면 많은 사람들이 크리쳐를 만들고 공유하며 즐겁게 스포어를 기다릴 수 있었을텐데. EA와 맥시스에게 그걸 바라는건 무리겠지.

서론이 길었다,
어쨌건 9월이 됐고 스포어는 발매됐고, 나는 스포어를 플레이 하게 됐다.
발매초기 각종 게임매체들의 평가도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내가 해본 스포어는 실망 그자체였다.
게임은 크게 세포단계-크리쳐단계-부족단계-문명단계-우주단계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 각각의 단계가 독자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고, 단계간에 서로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한다는게 가장 큰 문제점이다.
스포어의 핵심은 세포부터 시작되는 자기만의 생명체의 진화인데, 세포단계에서 어떤방식으로 크리쳐를 만들고 진화시키건 다음 단계까지 이어지고 영향을 주는 요소는 거의 없다는거다.
그냥 아무때고 짝짓기를 통해 전혀 다른 형태의 크리쳐로 바꿔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거면 도대체 그 전단계는 무슨의미가 있으며 이것이 과연 '진화'라는 컨셉을 만족시키고 있냐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각 단계마다의 게임진행 방식도 깊이가 없는 단순하고 지루함의 반복이다.
처음 세포단계는 마우스로 드래그하며 움직이면서 먹이를 찾아먹는 플래시게임정도의 수준이고 부족, 문명단계는 자원을 모으고 유닛을 생산하고 건물을 짓는 RTS 형태로 진행된다.
물론 게임의 한 단계에 불과하기때문에 그마저 타 RTS게임들보다 훨씬 단순화 되어있다.
뭐하나 새로울게 없는 미니게임들을 진화 단계별로 억지로 이어붙여놓은 캐쥬얼게임이라고 하면 윌라이트가 열받으려나?
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느꼈다.
우주단계에 들어서면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는듯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해 지루한 미션반복이 되고만다.
(물론 이런 엉성하고 깊이없는 구성임에도 구석구석 확장팩을 끼워넣을만한 곳이 여러군데 보일정도로 확장팩으로 울궈먹기를 시도할 낌새는 명백하다)
그냥 툴로 크리쳐랑 건물, 우주선 만들어서 우주단계부터 게임을 하면될걸 도대체 세포부터 우주단계까지 진화 아닌 진화를 하며 캐쥬얼게임을 반복해야 하는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하는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심즈는 남녀노소, 매니아나 라이트유저 모두 고르게 즐기는 게임이었지만 유난히 어린층과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윌라이트는 그걸보며 이번엔 아예 아동용 게임을 만들기로 작정을 하고 스포어를 만든것인가? 7년동안?
게임도중 유일하게 감탄을 했던 부분이 크리쳐 제작툴이었는데 이건 마치 레고를 가지고 이것저것 부수고 만드는 그런 느낌을 받게 한다.
정말 플레이하면서 '와.. 이 제작툴만 가지고 애들 놀게해도 지능계발에 도움 되겠다'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건 컴퓨터로 구현한 레고가 아니라 게임이며, 그것도 '시뮬레이션'게임이다.
캐쥬얼게임도 아니고 미니게임도 아닌 시뮬레이션 게임이란 말이다.

정말 윌라이트씨께서는 스포어를 놓고 '생명체의 진화과정을 세포단계부터 문명단계까지 모두 함축해낸 방대한 스케일의 시뮬레이션 게임'이라고 스스로 말하실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