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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퍼시픽림


개봉 첫 주말에 봤지만 기대에 한참 못미쳤던 탓에 감상 후기를 이제야 남긴다.

사실 아주 큰 기대를 한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덕후 감독으로 잘 알려진 길예르모 델토로와 남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어릴적 로망인 거대로봇과 괴수를 소재로 했음에도 난 조심스러웠다. 사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개봉후 이곳저곳의 관람후기와 특히 로봇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프라모델 커뮤니티등에 올라온 감상평들을 먼저 확인했다.

로봇물이라면 누구못지않은 매니아인 건덕들의 평가는 대체로 좋았다. 어릴적 꿈꾸던 로망이 눈앞에 펼쳐진다며 그냥 닥치고 봐야한다는 예찬 수준의 후기도 많았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에 큰 기대를 하지않고 봤음에도 퍼시픽림에서 만족을 느낄 수 없었다.

 

일단 시작은 좋았다.

어차피 이런 영화에서 스토리나 심각한 설정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걸 알고있다는듯이 쓸데없는 서론은 생략하고 간단한 요약과 함께 곧바로 로봇과 괴수를 등장시켜 액션씬을 펼쳐놓는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곧 주인공의 비극과 방황, 다시 팀에 합류하여 갈등을 겪다 여주인공과 만나는 과정등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뻔하고 맥빠진 스토리로 시간을 잡아 먹는다.

이런 영화에서 주인공이 고뇌하고 여주인공과 로맨스를 벌이는걸 기대하고 온 사람은 없다.

어차피 사실상 영화의 주인공은 거대로봇이다. 조연은 괴수들이고.. 배우들은 그보다도 존재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것이다. 그러니 이런 장면들에 몰입이 안되는것이고 개인적으로 여주인공도 전혀 매력없는 민폐 캐릭터였다고 본다.

뜬금없이 여주인공을 일본인으로 설정한것도 아무런 설득력이 없고(도대체 미국인인 대장 흑형이 왜 일본에가서 싸우고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따윈 없다) 뻔히 일본 개봉을 의식하고 끼워넣은 티가 난다.

 

뭐 이런부분들은 백번 이해해서 그렇다고 치자.

이 영화의 핵심인 로봇과 괴수의 액션씬만 제대로 보여준다면 난 얼마든지 박수를 칠 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이부분에서도 내 기대에 한참 못미쳤기에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우선 무엇보다 로봇들의 개성이 한참 부족하다.

영화에선 미국,호주,러시아,중국등 국가를 대표하는 거대로봇들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로봇들의 개성이 거의 없다.

애당초 이렇게 국가별로 로봇들을 설정했다면 그에 걸맞게 확실한 개성과 차별화된 컨셉을 적용했어야했다.

예를 들어 중무장형의 로봇이라면 느리지만 강한 맷집에 엄청난 화력을 쏟아붓는 형태로 만들고 스피드형의 로봇은 크기는 작고 장갑은 약하지만 빠른 기동력으로 치고빠지는 스타일의 액션을 잡았어야 했다.

또 대놓고 일본을 의식하고 만든티가 나는데 그럴거면 일본 로봇은 아예 사무라이 스타일로해서 검술을 쓰는식으로 확실히 특화를 시켰어야 한다. (웃긴건 정작 일본 로봇은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다)

중국 로봇도 쿵푸를 연상시키는 무술을 쓴다던가 해야되는데 조종사가 세명이 타서 팔도 세개라는게 유일한 특징이라는 설정인데 정작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박살나는 모습만 보여줄뿐이다. (팔이 세갠지 네갠지 제대로 기억도 못할 사람 많을거다)

물론 가슴에서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주인공 로봇 집시데인저가 검을 쓰는 장면이 있긴하지만 특화되거나 개성을 느낄 수 있는 수준에는 한참 부족한 그냥 평범한 무장정도로만 보여진다.

결국 그놈이 그놈같은데 그나마 몇안되는 로봇들중 절반은 제대로 액션한번 못보여주고 박살날뿐이니 허무하기까지 하다.

 

두번째는 액션의 연출이다.

로봇들을 여러개 등장시켰으면 최소한 괴수들과의 패싸움정도는 보여줄거라 믿었다.

하지만 액션 한씬에 많아야 괴수 두마리정도가 전부다.

도대체 괴수들은 왜 한꺼번에 때로 몰려오지않고 차례차례 한마리씩 오는걸까? 대기표 뽑고 줄서서 올라오는건가?

로봇들도 마찬가지여서 넌 전방에 나가고 넌 후방을 지키고 하는식으로 말도 안되는 작전을 펼치며 한놈씩 차례로 나가서 괴수들한테 쳐맞는다.

결국 단체로 육박전을 벌이는 모습은 끝내 볼 수 가 없다.

또 개인적으로 액션씬에서 가장 싫어하는 연출 두가지가 비오는 씬과 야간 씬인데 퍼시픽림에선 이 두가지를 다 동원해서 액션을 펼친다.

야간에 비까지 내리는 와중에 액션을 넣으면 일단 잘 보이질 않는다. 분위기를 위해 의도적으로 이런 배경설정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제작비 절감을 위해서 하는짓이다.

특히 이런 CG가 사용되는 경우 쨍한 대낮에 CG 액션을 연출하기보단 야간에 비까지 내리는 설정에 CG구현하는게 훨씬 수월하고 돈도 적게 들기때문인데 퍼시픽림의 액션도 이 경우에 속한다.

왜 괴수들은 대부분 밤에만 쳐들어오고 또 쳐들어올때마다 비가 내리는걸까?

또 하나의 실망스러운 부분은 야간에 비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중요한 액션장면이 바다에서 펼쳐진다는 것이다.

80미터 크기의 거대로봇과 거대괴수라는 설정을 자랑스럽게 내걸어놓고 시종일관 바다위에서 싸움질을 하니 그 80미터라는 스케일이 제대로 느껴지질 않는것이다.

어차피 보이는건 바다뿐인데 80미터인지 8미터인지 알게 뭐란말이냐.

이것 역시 감독의 교묘한 제작비 절감 차원의 의도된 연출인것이 틀림 없다.

물론 낮에 로봇이 등장하는 장면과 홍콩 도심을 배경으로 전투를 벌이는 장면도 있긴하지만 액션의 대부분이 야간,비,바다위에서 벌어지는것이 사실이다.

특히 하이라이트가 되어야할 마지막 최종 액션은 심지어 바다속에서 벌어지는데 지루한 액션만 보여주다 어이없는 탈출로 이어지는 엔딩에서 이게 정말 최종 전투씬이 맞는지 어이가 없을정도다.

내가 퍼시픽림에서 인상깊게 본 장면은 초반에 집시데인저가 반파된 상태로 해안가로 걸어나와 쓰러지는 장면과 후반 홍콩에서 괴수와 싸울때 배를 무기삼아 질질 끌며 걸어나오는 장면 딱 두가지뿐이었다.

 

아마 리얼한 CG로 구현한 거대로봇과 괴수가 서로 주먹질을 하는것만으로도 만족스럽게 본 사람들도 있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CG로 무언가를 리얼하게 만들어 보여주는 자체로 만족할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그건 이제 기본이고 그 만들어낸것을 가지고 어떻게 표현하고 연출하느냐가 중요한 시대에 와있다는것이다.

특히 이렇게 거대로봇과 괴수라는 소재를 가지고 이것저것 오마주까지 곁들이며 작정하고 만들었다면 그쪽방면의 매니아들까지 충족시킬 수 있었어야했는데 그러기에는 한참 부족한 영화였다.


5.5/10